[딜레마 빠진 경제정책] 가계부채 대책 부동산시장 영향은
유례 없는 초저금리 상태 지속
시중 자금 유입 막기엔 역부족… 개포주공 청약 100대1 넘어
대출 줄이려 공급 축소한다지만 장기적으로는 집값 올리는 정책
"찬바람 지방 집값에 영향 줄 것"
정부의 가계 부채 대책 발표를 하루 앞둔 24일 저녁,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3단지 재건축 아파트 '디에이치 아너힐즈'의 청약 경쟁률이 발표됐다. 평균100.6대1, 올해 서울 최고 기록이었다. 이 아파트는 84㎡짜리 주택의 분양 가격이 14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주택이다. 대형 건설사의 분양 담당 임원 A씨는 "마치 2000년대 중반 부동산 시장이 버블에 휩싸였을 때를 보는 것 같다"며 "개포주공 3단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도 받지 못하고 정부가 가계 부채 대책까지 발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보란 듯이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부 지역의 분양 시장이 과열(過熱)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25일 내놓은 '가계 부채 관리 방안'을 두고 "가계 부채는 좀 줄어들지 모르겠지만, 수도권 분양 시장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타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중도금 규제 방안 등은 초저금리 상황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 분양시장, 재건축 시장 계속 타오를 듯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의 가계 부채 대책으로 현재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서울과 경기도 등 일부 지역의 분양 시장이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전매 제한, 재당첨 금지, 청약 1순위 자격 강화 등 분양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은 다 빠졌다. 주택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알짜' 규제가 빠져 버린 셈이다.
대신 정부는 이번 대책에 중도금 대출 보증 건수를 HUG와 주택금융공사 '각각 2건(총 4건)'에서 '합쳐서 2건'으로 제한하고, 보증 범위도 100%에서 90%로 줄이는 등의 방안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 역시 과열된 신규 분양 시장의 열기를 가라앉힐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양 시장 과열의 가장 큰 이유는 유례없는 초저금리"라며 "극단적으로 중도금 대출 보증을 못 받아도 불과 0.5%포인트 오른 금리만 내면 대출을 받을 수 있어 투자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재건축 아파트 시장에 대한 대책도 빠졌다. 현재 서울 주택 가격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2000년대 중반의 최고점을 넘어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의 아파트들은 올 들어 많게는 2억~3억원씩 가격이 올랐다. 서울 개포동의 A공인 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 재건축 투자자가 강북으로 넘어가 노원구까지 원정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택지 공급 줄이는 정책, 가격 상승 유도 정책이라는 지적도
게다가 정부가 이번에 꺼내 든 '주택 공급량 조절'이라는 카드는 기본적으로 주택 값을 올리는 정책이다. 정부는 택지를 줄이면 아파트 분양이 줄고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이 줄 것으로 봤다. 즉, 가계 대출 감소를 위해 주택 공급을 줄인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서울 주택시장은 택지 공급 감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조만 KDI 교수는 "서울은 그린벨트 해제 지역 등을 제외하고는 공공택지 자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주택 시장도 지역에 따라 분위기 달라, 정부 대책도 오락가락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정부 대책이 주택 시장에 주는 메시지 자체가 혼란스럽다"는 의견이 퍼지고 있다. 현재 주택 시장은 복잡하다.
서울의 일부 재건축 시장과 수도권 분양 시장에는 과열 조짐이 있지만, 대구·경북·충청 지역 등 지방 도시는 공급 과잉으로 인한 집값 하락 위험 경보가 울리고 있다. 정부의 가계 부채 대책이 서울 강남 재건축의 과열을 막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지방 집값 하락을 막으려는 것인지 목적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동현 KEB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은 "택지 공급을 줄여 찬바람 부는 지방 주택 경기를 끌어올리는 정책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장상진 기자 / 2016.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