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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신문기사] [실패한 부동산정책]① 온 나라가 역대급 상승장… "모두가 '부동산 우울증' 겪는다"


 
50대 직장인 최모씨는 요즘 부동산 뉴스만 보면 속이 끓는다. 지난 2018년 이사하며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한 정부 말을 믿고 집을 사지 않았는데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매수는커녕 전세금까지 걱정하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그가 매도한 노원구 아파트값은 이미 4억원쯤 올랐다. 최 씨는 "정부 말을 들은 것을 매일 후회하고 있다"면서 "집을 사지 않아 ‘벼락 거지’가 됐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고 씁쓸히 웃었다. 최 씨는 아내와의 갈등까지 늘면서 최근 병원을 찾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도 했다.
 

노무현 정부 이후 정권별 서울 아파트 시세 변동/경실련 제공
◇ "신고가 찍지 않은 곳이 없다"

"요즘 신고가 찍지 않은 동네도 있나요?"

집을 알아보러 공인중개업소에 들렀다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물으면 돌아오곤 하는 답변이다. 사실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시장 동향을 묻다가도 흔히 듣는 말이다. 이들의 말처럼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25번의 부동산 대책에도 전국의 부동산 시장은 ‘역대급 상승장’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국민과의 대화에서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하고 있다"면서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랬던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며 부동산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이 입장을 바꿔 사과해야 했던 이유는 통계가 여실히 보여준다. KB국민은행 리브 부동산의 월간 매매지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국 19.75% ▲수도권 32.44% ▲서울 44.74% 상승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13년 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전국 9.82% ▲수도권 9.38% ▲서울 10.06% 오른 것과 비교하면 급등을 넘어 폭등에 가깝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 5년 동안에는 전국 아파트 가격이 15.9% 올랐지만, 오히려 수도권은 4.01%, 서울은 3.16% 하락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한참을 시장 상황에 눈을 감았다. 오죽하면 진보 시민단체에서도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해 11월 "지난 2008년 2281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당(3.3㎡당) 시세는 12년간 82% 올라 4156만원이 됐다"며 "문재인 정부 3년간 상승액만 평당 1531만원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상승액(344만 원)의 4.5배"라고 밝혔다.

경실련은 이어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14% 올랐다는 국토교통부의 발표에 대해 "국토부의 발표대로라면 2020년 시세반영률이 99.9%에 달하는데, 공식 시세반영률은 69%"라며 "정부의 아파트값, 공시가격, 시세반영률까지 모든 수치가 제각각인 이유는 부동산 통계가 밀실에서 조작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경실련이 인식하는 것처럼 서울 각지는 돌아가면서 상승세를 타는 순환 장을 이어갔다. 강남을 시작으로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 불붙었다. 이후에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 등 대표적인 중·저가 서민 주거지구까지 가격이 올라, 지난해에는 KB시세 기준 서울 아파트의 중위값이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기준인 9억원을 돌파했다.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니 빌라 등 다세대·다가구 주택 시장까지 달아올랐다.

서울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부동산 열기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수도권의 경우 하남과 과천 등이 오르더니 수용성(수원·용인·성남)이 크게 올랐고, 비규제지역이던 파주까지 상승의 불길은 번졌다. 세종·대전 등 충청권도 부동산 시장의 핵으로 떠올랐다. 세종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아파트값이 58.89%나 뛰었다.

법인 투자자들의 원정 싹쓸이가 기승을 부린 청주·거제의 집값도 한때 급등했고, ‘부동산 사각지대’로 남을 것만 같았던 강원도 속초와 제주에서도 10억원 넘는 아파트가 등장했다.

전국에서 오르지 않은 곳이 없다 보니 정부는 규제지역을 끊임없이 넓혀갔다. 급기야 지난해 6·17대책에서는 아파트 한 채 없는 인천 실미도까지 조정대상 지역에 포함돼 시장에서 풍자와 조소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 ‘세입자 보호한다는 법’에 폭등한 전·월세 시장

무주택자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전·월세 등 임대차 시장도 무섭게 올라 서민들의 숨통을 죄었다.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정부와 여당이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며 도입한 주택임대차보호 3법 도입 이후 본격적인 폭등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압승한 후 7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강행 처리했다. 세입자의 권리를 신장하겠다는 명분이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를 소멸시키고 세입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것’이라 경고했고, 법조계에서도 ‘임대인과 세입자 사이의 균형을 잃은 법’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상임위 법안심사소위를 구성하기도 전에 야당의 반대를 묵살하고 밀어붙였다.

그 결과 임대차 시장에도 역대급 폭동이 시작됐다. KB 리브 부동산의 월간 전세가격 지수 통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2017년 5월부터 임대차3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지난해 7월까지 아파트 전세가격은 ▲서울 5.82% ▲수도권 2.52% ▲전국 0.36%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런데 임대차3법 시행 이후 지난달까지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은 ▲서울 12.21% ▲수도권 10.69% ▲전국 8.03%로 치솟았다.
 

서울 서초구 일대 공인중개사사무소에 붙어있는 전월세 홍보 전단/조선DB
이런 가운데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은 커져만 가고 있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계약 비율은 지난해 1월 38.58%에서 지난 1월 41.64%로 높아졌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 같은 기간 28.77%에서 35.15%로 6.88%포인트나 높아졌다.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가속하자 월세 시장도 꿈틀거리고 있다. KB 리브부동산은 지난 2월 서울 지역 아파트의 월세가 전년 동월 대비 4.93% 상승해 지난 2015년 12월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30대 부부가 6살배기 딸을 위해 목동 전셋집으로 이사했다가 4년 만에 폭등한 전셋값을 두고 싸움이 나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투신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 ‘벼락거지 될라’…전 국민이 부동산만 바라보는 나라

부동산 대참사는 부동산이 정치·사회 양상까지 바꾸도록 만들었다. 부동산 상승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벼락 거지’로 자조했고, 아파트 소유자들은 정부의 세금 폭탄에 전전긍긍했다. 집이 있건 없건 모두 ‘부동산 블루(Blue·우울증)’에 빠져들었다.

보유자산이 많지 않아 이제껏 부동산 시장의 관전자에 가까웠던 20·30세대마저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 등 가능한 자금을 최대한 동원하는 영끌(영혼 끌어모으기)로 부동산 시장을 주도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입자 중 20~30대의 비율은 상반기만 하더라도 30~36%대였으나, 8월 이후 40% 내외로 올랐고 지난 1월에는 44.70%까지 상승했다.

젊은 층이 늘어나다 보니 예능에서도 부동산이 전면에 부각됐다. 의뢰인들의 요구에 적합한 주택을 찾아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여러 방송국에서 방영되고 있고, 웹툰에서도 현실 풍자의 소재로 부동산이 이용되고 있다. 일반인들도 부동산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조롱과 풍자를 쏟아내고 있다. 필명 ‘삼호어묵’으로 유명한 주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부·여당이 집값을 잡을 의지가 없다는 글을 올려 일약 유명세를 얻은 후 주요 언론에 글을 기고하는 등 ‘논객’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부동산은 사회·문화 영역을 넘어 정치에서도 주요 의제로 등극했다. 대정부질문이 열리면 국토교통부 장관뿐 아니라 경제부총리, 국무총리마저 부동산 폭등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부동산이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된 와중에 당·정·청 인사들의 ‘내로남불’도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청와대지만, 김의겸 전 대변인은 흑석동 재개발 지역 투기 의혹으로 옷을 벗었고 김조원 전 민정수석은 다주택 처분 지침이 내려진 후 사표를 내고 2주택자 신분을 유지했다.

임대차 3법 통과를 주도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법 통과 직전 세입자에게 전세를 대폭 올려받은 사실이 드러나 경질됐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공공 주도 공급의 핵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는 일부 직원들이 신도시 예정부지에 사전 투기를 한 사실이 발각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결국 부동산으로 응집된 여론의 분노는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분출됐다. 여당·야당 모두 선거 기간 내내 부동산에 매달렸다. 결국 민주당의 부동산 실정(失政)을 꼬집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424개 동 중 5개 동을 제외한 419개 동에서 여당 후보를 이겨 압도적인 승리로 당선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된 부동산 민심은 오는 2022년 대통령 선거·지방선거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무주택자들의 불안뿐 아니라 주택보유자들의 과세 부담까지 대폭 늘어나면서 부동산 의제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 국민이 부동산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라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부동산 이슈 없이 내년 선거를 치르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러스트=안병현
 
 
조선비즈(유병훈 기자/2021.04.20)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4/19/20210419022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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